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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이집트 미술 그림과 조각

by 지구 이방인 2020.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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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문자시대였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지나 서양문명과 예술의 근원이라 불리는 이집트 미술도 꽃피기 시작한다. 이집트인들은 영혼불멸에 대한 집착이 심했다. 그들의 지배자인 파라오의 사후 안락한 삶을 보장하는 것이 그들의 집중적 관심사였고, 이집트인들의 예술 및 건축물들 대부분은 파라오 영혼의 영원한 영광을 위해 존재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에 대한 대부분의 지식은 무덤에서 출품된 유물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는데, 이는 영혼 불멸을 믿은 이집트 인들이 죽은 후에도 지상에서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 온갖 사치품들은 다 함께 묻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죽은 자 생전의 일상에 대해 적힌 상형문자와 벽화, 그리고 미라로 만든 육신이 부패했을 경우를 대신하여 머무를 곳으로 초상 조각을 만들었다. 

 

이집트의 두상 및 초상 조각

 

 

이집트의 초상 조각을 설명하는 데 있어,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는데, 이집트 인들은 사람이 죽고 세 가지 형태의 혼이 남는다고 생각했다.

그 혼은 카(ka), 바(ba),아크(ack)로 그중 카(ka)는 개인의 생명력으로 여겼다. '카'는 육신이 죽으면 몸을 떠나 이승과 저승을 여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때 죽은 사람의 조각상은 실제 모습과 충분히 닮도록 해서 누구인지를 식별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야만 카가 자신의 육신을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새 사냥>,<네비문의 정원>

 

이러한 이집트 미술에는 정형화된 제작방식 있는데, 우리가 실제 보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 한게 아니라 신체를 각각 해체를 통해서 완전한 형태의 그림을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눈과 어깨는 정면을 향하고 있더라도, 머리와 팔다리는 측면으로 그려져 있다. 또한 인물의 크기는 신분에 따라 달라지며 파라오는 크게, 시종들은 난쟁이처럼 표현했다. 인물 표현뿐만 아니라 오른쪽 그림인 네바문의 정원이라는 벽화를 봐도 이러한 기법이 종에 제한을 두고 쓰인 기법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는데, 윗 측면에서 바라본 시점으로 그려져야 할 물고기들이 측면에서 바라본 물고기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집트인들의 그림 속에 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모든 것을 다 그려 넣어야 한다는 엄격한 규칙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딸을 안고있는 네페르티티>

 

그러나, 유일하게 이집트 양식의 철칙을 위흔든 사람이 아멘호텝 4세이다. 그가 화가들에게 그리게 했던 그림에는 초기 파라오들을 묘사할 때처럼 엄숙하고 딱딱한 위엄은 찾아보기 힘들다. <딸들을 안고 있는 아크나톤과 네페르티티>의 그림은 그가 태양의 신 아톤의 축복을 받으며 아내 네페르티티와 함께 자녀들을 사랑스럽게 껴안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또한 의자 위의 왕의 자세가 엄격한 이집트의 양식에서 벗아나 자유롭고 그의 부인은 그보다 작게 그려지지도 않았다.

 

투탕카멘 황금 마스크

 

그리고 마지막으로 투탕카맨의 이야기. 투탕카멘은 익히 들어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투탕카멘은 살아있을 동안은 별로 중요한 인물은 아녔다고 한다. 영국의 고고학자 한 명이 왕묘의 존재를 찾기 위해 6년 동안이나 왕의 계곡을 탐사하다가 마침내 1922년 투탕카멘의 왕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의 왕묘는 온통 황금 더미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파라오의 장례절차에 대한 지식은 모두 투탕카멘의 무덤을 통해 얻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곳에는 과일 바구니, 꽃다발, 황금 의자, 왕관, 황금 마스크까지 다양한 금제품이 속해있었다고. 또한 투탕카멘과 관련된 다양한 소문도 전해지는데, 무덤을 발굴하는데 관여한 20여 명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 '파라오의 저주'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자료 참조

클릭, 서양 미술사

http://egloos.zum.com/tangka/v/1640600 <이집트의 영혼관>

곰브리치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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